우리고장의 역사
부산진구는 삼한 시대에 거칠산국(居漆山國), 신라 때에는 동래군 동평현,
고려때는 양주 동평현, 조선시대에는 동래부의 동평면 일부와 서면일부 지역이다.
부산진구의 명칭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구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진성에서 유래되어,
1936년 출장소가 설치될 때 부산진출장소라 하였고, 1957년 구제 실시때 부산진구로 되었다.
고대시대
- 구석기 시대 :기원전 1만 5천년경 해운대 중동유적지 발견, 원시적인 돌기구 사용
- 신석기 시대 :기원전 6천년 ~ 2천년경. 영도 동삼동 패총, 범방동, 암남동, 다대동 패총 등에서 빗살무늬토기 발견
- 청동기 시대 :기원전 1천년 ~ 300넌경. 반여동 유적지, 감천동 주거유적지 등에서 주거지(집) 및 지석묘, 석관묘 등 무덤과 무늬없는 토기발견 내륙 구릉지를 중심으로 농경생활 정착
삼한시대
- 기원전 300년경 이후 철기 문화 시대 : 복천동 유적지, 노포동 고분 등에서 철기 발견
- 부산지역은 삼한국가 중에서 변한에 소속되었다가 6가야가 일어나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이후 거칠산국 영역에 들어감
삼국시대
- 신라 탈해왕(AD 57 ~ 79)때 거칠산국이 신라에 편입되었으나 당감 가야지역은 가락국 영역에 있었음
- 신라 지증왕 6년 (505년)에 거칠산군을 설치하고 지금의 당감동에 대증현을 둠
- 경덕왕 16년(575년)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칭
고려시대
- 태조 원년(918년) 동래군은 동남도에 소속되고
- 현종 12년에 대증현은 동평현으로 개칭되어 경상주도에 소속됨
- 충숙왕 원년(1314년)에 동남도를 경상도로 개칭
- 공민왕(1368년)에 처음으로 '부산'이라는 지명 사용됨
조선시대
- 중종 14년(1519년) 동평현은 동래군에 소속됨
- 영조 16년(1740년) 동래부로 승격되면서 동평면과 서면으로 나누어짐
- 동평면 구역 : 당감, 가야, 범일, 좌천, 초량 일원 - 서면 구역 : 양정, 초읍, 전포, 거제, 만덕 일원
- 1900년 - 부산에 처음 전등 가설
일제강점기
- 1910년 10월 1일 : 부산부 설치(영도일원, 범일, 좌천, 수정, 대신동, 부평, 용당 지역이 포함됨)
- 1910년 : 전차개통(부산우체국 ~ 온천장까지 약 30km)
- 1936년 4월 1일 : 부산부에 부산진출장소 설치
- 관할구역 : 부전, 범전, 연지, 초읍, 양정, 전포, 부암, 당감, 가야, 개금, 문현, 대연, 용당, 용호, 우암, 감만동 등
현대
- 1949년 8월 15일 : 부산부를 부산시로 개칭
- 1957년 1월 1일 : 부산시에 구제가 실시되면서 부산진구가 설치됨
- 1963년 1월 1일 :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됨
- 1988년 5월 1일 : 구자치제 실시 (현재 20개동)